프란체스코 살레시오 성인은 이탈리아의 작은 공국인 사보이(Savoy)의 토렌스(Thorens)에서 1567년 8월 21일 태어났다. 6남매 중 첫째였으며 그의 아버지인 프랑수아와 어머니 프랑수아즈는 사보이공국의 귀족이었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그의 아버지는 살레시오를 행정관으로 키우고자 9세 때 카푸친회에서 운영하는 안시(Anney)의 학교로 보냈고, 그는 1582년부터 예수회에서 운영하는 클레르몽(Clermont)대학과 파리의 소르본대학교에서 수사학과 인문학, 신학을 공부하였다. 1588년 파도바(Padoba)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하였고 결정적으로 이 시기에 신학자 포세비노의 도움으로 신학공부와 영적 지도를 받게 된다. 이때 교회법과 일반시민법을 전공하였고 1592년 박사학위를 받았다.
공부를 모두 마친 프란체스코 살레시오는 후견인으로부터 법률가, 상원의원, 청혼을 제의 받지만 모두 거절하고 성직자가 되고자 하였으며, 우여곡절 끝에 1593년 12월 18일 안시에서 사제 서품을 받고 제네바 교구의 참사위원직으로 활동하였다.
1594년 프로테스탄트를 강요하던 칼뱅주의자들의 지역인 이탈리아 샤블레(Chablais) 지역의 선교를 자원하는 것으로 신부 활동을 시작하였다.
그의 끈질긴 노력으로 많은 샤블레 사람들이 가톨릭 교회로 다시 돌아오게 되었고, 이로 인해 그를 참사위원직으로 사제 서품을 받도록 도와준 제네바 교구장인 그라니에 주교의 주선으로 부주교로 임명되었다.
1602년 그라니에 주교의 죽음으로 제네바 교구장이 된 그는 젊은이와 노인을 포함한 평신도들을 위한 교리의 제도적인 교육을 위해 힘썼으며, 1607년 젊은 여성들이나 미망인들을 위한 수도회인 성 마리아 방문 수도회를 설립하였다. 1622년 사보이공국의 대표로 프랑스를 방문하고 돌아오는 길에 뇌일혈로 쓰러져 1622년 12월 28일 56세의 나이로 숨을 거두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프란체스코 살레시오 [Franciscus Salesius]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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